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꽤 자주 듣습니다. "선생님, 저 1학년 때는 1등급도 받았는데, 2학년 되고 나서 왜 이렇게 성적이 떨어지는 건가요?" 공부를 덜 한 것도 아닌데 등급이 내려가니, 학생 본인도 부모도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일반고 1학년 자퇴생이 사상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 숫자 뒤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는지,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내신 5등급제 1만 명을 넘긴 고1 자퇴, 숫자가 말하는 것
지난해 전국 일반고 학업중단자는 총 1만 8,661명이었습니다. 이 중 고1 학생이 1만 450명으로 전체의 56%를 차지했습니다. 전년도(9,847명)와 비교하면 6.1% 늘어난 수치이고,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한 기록입니다(출처: 교육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고1 비중입니다. 고2가 7,346명(39.4%), 고3이 865명(4.6%)인 것과 비교하면, 학생들이 1학년을 마친 시점에서 가장 많이 이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입시 상담 현장에서 제가 직접 봐온 흐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학생들이 1학년 성적표를 받아 들고, 2학년 이후를 계산해본 뒤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교육부는 "내신 5등급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내신 5등급제란 기존의 9등급 체계를 5등급으로 단순화한 제도로, 상위 10%까지를 1등급으로 분류합니다. 교육부는 자퇴생의 평균 등급이 3.7등급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최종 결과치입니다. 1학년 때 1등급을 받다가 2학년부터 등급이 무너진 학생이 자퇴했다면, 그 평균도 3~4등급대로 나옵니다. 원인을 보여주는 통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교학점제가 만든 역설적 구조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직접 고르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고교학점제란 기존의 일괄적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수강 과목을 설계하고 일정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한 방식입니다. 미국식 고등학교 운영 방식을 참고한 개념으로, 자기 주도적 교육을 목표로 합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학이 먼저 답을 내놨습니다. 공학 계열이라면 물리·화학, 생명과학 계열이라면 생물 수강을 권장하는 식입니다. 학생이 "선택"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지원하려는 학과가 선택지를 정해놓은 구조입니다. 제가 상담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도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목표로 하느냐"입니다. 그다음에 과목을 맞춥니다. 이것이 현장의 실제 고교학점제 활용 방식입니다.
여기에 상대평가가 맞물리면서 구조적 모순이 생깁니다. 1학년 공통 국어, 공통 수학은 경기도 기준 한 학교에서 200~250명이 함께 시험을 봅니다. 내신 5등급제에서 1등급은 상위 10%이므로 약 20~25명이 받을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리를 선택한 학생이 70명이면, 1등급은 7명뿐입니다. 선택 인원이 줄어들수록 경쟁은 더 좁아집니다. 2학년 2학기, 3학년 1학기로 갈수록 특정 과목 수강 인원은 계속 감소하기 때문에 상황은 악화됩니다. 제가 직접 학생들의 성적표 변화를 추적해보니, 1학년 때 상위권이었다가 2학년 이후 급락하는 패턴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진로선택과목 상대평가화, 구조의 핵심 문제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변화를 짚어야 합니다. 진로선택과목의 상대평가 전환입니다. 진로선택과목이란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관심사에 따라 선택하는 심화 과목군으로, 기존 9등급제 시절에는 절대평가(A·B·C 등급)로 성취 수준만 평가했습니다.
절대평가란 다른 학생들의 성적에 상관없이, 본인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소수만 선택하는 과목에 적합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고1 학생들부터는 이 진로선택과목도 상대평가를 적용받습니다.
상대평가란 응시 인원 중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어야 특정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학생들이 더 잘하면 등급이 내려갑니다. 문제는 이것이 진로선택과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공대를 목표로 물리를 선택했는데, 그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12명이라면 1등급은 단 1명입니다. 공대 진학을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인데, 그 과목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설계되어 있는 셈입니다. 선택을 장려하는 제도인데, 실제로는 선택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교육부의 반박에 설득력이 부족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증가했지만 유의미하지 않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증가는 인정하면서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원인 분석 없이 숫자만 방어하는 태도로 보입니다.
최소학점 미충족과 이탈을 부르는 심리
자퇴 원인으로 잘 언급되지 않는 또 하나의 구조적 요인이 있습니다. 최소학점 미충족 문제입니다. 최소학점 미충족이란 고교학점제 체계에서 특정 과목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보충 이수(보충 학습)를 강제로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기존에는 출석 일수를 채우면 졸업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이후에는 일정 학점을 이수해야만 졸업 자격이 생깁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성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방과 후나 방학을 이용한 보충 학습 이수가 필요합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거나 고민 중인 학생 입장에서 보면 이 구조가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상담했던 학생 중에도 "어차피 대학 안 갈 건데 왜 보충 학습까지 받아야 하냐"는 반응을 보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제도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이 출구를 좁혀놓은 상황에서 자퇴를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자퇴로 이어지는 심리적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학년: 공통과목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 → 기대 상승
- 2학년: 과목 선택 후 수강 인원 감소 → 상대평가 경쟁 심화 → 등급 하락
- 등급 하락 후: "내가 못하는 건가" 혼란 → 입시 전략 재계산
- 최소학점 미충족 발생 시: 보충 학습 부담 → 이탈 결정
이 흐름은 성적이 나쁜 학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적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고, 그것이 통계에 "복합적 요인"이라는 항목으로 묻히고 있는 겁니다.
고1 자퇴생 1만 명 돌파는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닙니다. 제도 설계의 허점이 학생들에게 직접 전달된 결과로 봐야 합니다. 진로선택과목을 상대평가로 전환한 것, 그리고 학점 이수 의무화가 만들어낸 압박이 맞물리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교육부가 통계로만 반박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도를 보완해야 할 시점입니다. 자녀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면, 2학년 이후 과목 선택과 수강 인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입시 컨설팅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