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일반고 고1 학업중단자가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적잖이 놀랐는데, 10년 가까이 입시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이 정도 속도의 변화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고교 학점제, 내신 5등급제, 통합형 수능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제가 직접 상담하며 체감한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선택 압력: 학점제 아이러니
고교 학점제(高校 學點制)란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을 충족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대학처럼 수강 신청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2024학년도부터 전면 도입되었고, 제도 자체의 취지는 분명히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담하면서 실제로 들어보니 상황이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과목을 고를 때 "이 과목이 배우고 싶다"는 기준보다 "대학에서 이 선택을 어떻게 볼까"를 먼저 따진다는 겁니다. 선택권을 주겠다고 만든 제도인데, 정작 학생들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기계공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물리를 선택하려는데, 해당 학교 물리 신청 인원이 70명밖에 안 됩니다. 내신 5등급제에서 1등급은 상위 10%이므로 정확히 7명만 1등급을 받습니다. 나머지 63명은 모두 2등급 이하입니다. "공대 가려면 물리를 들어야 하는데, 물리를 들면 3등급이 나온다"는 이 딜레마를 학생들은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 선택하라고 해놓고 선택을 제한하는 구조입니다.
공동 교육 과정(共同 敎育 課程)이란 한 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을 인근 학교나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해 함께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선택권의 폭을 넓히기 위한 보완책인데, 일반적으로 이 제도가 잘 작동하면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현장에서 그 반대를 더 자주 봤습니다. 이동 수업이나 온라인 병행으로 오히려 시간적·체력적 부담이 늘어났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5등급제의 역설: 완화가 부른 더 큰 불안
내신 5등급제는 기존 9등급제를 5등급으로 단순화한 제도입니다. 기존 9등급제에서 1등급은 상위 4%였지만, 5등급제에서는 상위 10%까지 1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학생에게 높은 등급을 주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상담 현장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꺼내는 말이 "저 2등급 나왔는데 인서울 못 가는 거 아닌가요?"입니다. 9등급제에서 2등급은 상위 11%였습니다. 5등급제에서는 상위 34%까지 2등급에 포함됩니다. 같은 '2등급'인데 의미가 전혀 다른 겁니다.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이 오히려 커진 이유입니다.
대학 입장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같은 1등급 안에 상위 4%와 상위 10% 학생이 뒤섞이니, 수시전형(隨時銓衡)—즉 학교생활기록부 기반으로 수시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에서 내신만으로는 변별이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대학들은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수행평가, 진로 활동 같은 비교과 영역을 더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내신만 잘 받으면 된다"는 공식이 무너진 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쟁을 완화하려다가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커지는 역설이 생겼습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내신 5등급제 도입 이후 학생 10명 중 7명이 사교육 지출이 오히려 늘었다고 답했는데(출처: 교육부), 이 수치가 이 역설을 잘 설명해줍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9등급제 1등급: 상위 4% / 5등급제 1등급: 상위 10%
- 같은 등급 안에 더 넓은 스펙트럼 → 대학의 변별 기준 이동
- 내신 경쟁 완화 의도 → 비교과 경쟁 심화라는 역효과
- 사교육 지출 증가: 도입 이후 학생 70%가 지출 늘었다고 응답
불확실성: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2028 수능
통합형 수능(統合型 修能)이란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시험을 치르는 방식입니다. 기존에는 계열별로 다른 수학·탐구 과목을 선택했다면, 통합형에서는 전 영역을 아우르는 공통 문항 비중이 높아집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고교 학점제와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학점제로 다양한 과목을 배우면서 내신을 관리해야 하는데, 동시에 수능까지 준비해야 하니 총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하는 질문 중 제가 가장 답하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통합형 수능은 쉽게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변별은 어떻게 하려는 건가요?" 이건 정당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도 확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공교육 현장에서의 정보 제공이 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각 학교에서 진로 진학 설명회를 열고 있지만, 학생들이 실제로 원하는 수준의 정보—"내 성적이면 어떤 전형으로 어느 대학을 노려야 하는가"—까지는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의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사교육이 채웁니다. 그런데 사교육 기관도 2028 대입의 불확실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만 혼자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전국에는 약 2,398개의 일반고가 있는데, 지난해 고1 학업중단자가 1만450명이었다는 것은 학교당 평균 4~5명 수준입니다(출처: 교육통계서비스). 이 중 상당수는 대인관계나 정서적 어려움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학교에 계속 다니는 것이 입시에 유리한가"라는 질문을 학생들이 스스로 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교육 신뢰의 균열을 보여줍니다.
2028 대입을 앞두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제도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만큼,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맞추려는 전략보다 학생 본인의 강점을 하나씩 쌓아가는 방향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변별 기준이 비교과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면, 오히려 학교 수업에서 깊이 있는 활동을 남기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입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제가 10년 가까이 입시 현장에서 얻은 결론입니다.